<북토피아> 먼지 2003/03/15
2003.09.05 20:29
△먼지, 조지프 어메이토 지음, 이소 출판사 펴냄
근대와 현대에 걸친 과학의 발달은 인류의 개념, 그 중에서도 수량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바다보다 넓은 지구의 존재와 그 보다 넓은 우주. 그 끝을 알 수 없는 크기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거대함의 무력함을 일깨워줬다. 반대로 작은 것에 대한 대명사로 더 이상 적합할 것이 없었던 먼지, 이제 그 먼지보다도 훨씬 더 작고 미세한 물질들이 우주를 조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작은 것에 대한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게 한다.
햇빛 아래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 여러 겹 뭉쳐 있어야 겨우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하찮은 먼지에 대한 한 권의 책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 책을 먼지의 역사라고 하나 실은 역사서라기보다는 먼지에 관련된 여러 내용을 두루 종합한 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최근에 와서 한 가지 일상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데 아마도 그 중 가장 작은 주제를 삼은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먼지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역사는 먼지와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러움과 천한 것을 먼지와 동일시하며 먼지와의 격리를 추구해온 것이 오늘날까지 이르는 것이다. 중세시대 농민은 귀족계급보다 먼지를 더 많이 뒤집어쓴 것으로 구분이 됐다. 그 시대 농민들의 삶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신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더러움에 완전히 노출돼 있는 그들의 몸은 언제나 세균의 온상이었고 엄지손가락을 이잡개(TUE-POUX)라고 부를 만큼 벌레들이 우글거렸다. 귀족이라고 해도 오늘의 잣대로 보면 더럽기는 마찬가지여서 각종 악취와 오물이 가득했지만 왕궁을 온통 향수로 채우고 향수를 뿌린 비둘기를 집안에서 날게 하는 등 어떻게 하든지 더러움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시켜보려고 애썼다.
그후 찾아온 산업혁명은 먼지에 대한 일종의 대청소를 의미했다. 한편으로는 산업화를 통해 엄청난 양의 먼지를 발생시키면서도 세계를 깨끗이 청소하는 기구와 약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세제와 기구들, 거기에 맞물려 발달한 의학은 인류를 그야말로 먼지와 오물,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바이러스·박테리아·DNA·원자·분자 같은 더 작지만 실제적 존재가 우리에게 알려졌고 인류는 그에 대한 대처를 또다시 고민하게 됐다.
먼지에 관한 이야기도 그와의 전쟁도 인류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되리라. 인간도 먼지라고 하지 않는가. 먼지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주범인 인간이 그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올 ‘황사먼지’와 그에 대한 대응이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3/03/15
○ 입력시간 : 2003/03/14 11:4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