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 테크노폴리 2002/06/22
2003.02.05 14:53
닐 포스트먼 지음/ 민음사 펴냄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자주 등장해왔다. 허구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런 내용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기계문명에 대한 낯섦과 불안함을 반영하기에 오랫동안 관심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눈부시게 발전해온 기계화 문명 속에서 기계화의 부작용 또는 기계화가 몰고 올 폐해들에 대해 경종을 울려온 사람들은 기계화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닐 포스트먼은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적 관점에서 기계문명의 폐해를 분석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도구사용문화·기술주의문화·테크노폴리로 분류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사용한 ‘테크노폴리’는 인간의 문화와 생활이 기술에 종속된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이 고안한 잠수함의 설계도를 끝내 공개하지 않은 것도 당시가 도구사용 문화였기 때문이다.
기술주의문화를 거쳐 테크노폴리에 이르면 기술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가치관·진리·의식뿐 아니라 인간들까지도 하위에 점유시켜 전체군주로 군림한다. 기술은 이제 전통적인 사고를 허물어뜨릴 뿐 아니라 인간에게 자신이 제공하는 사고 체계와 문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술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현혹돼 자신이 당연히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를 망각한 채 기꺼이 기술의 노예로 전락해버린다.
사회의 여러 각도에서 드러나는 테크노폴리의 현상을 고발하는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교육에 거는 희망이다. 역사에 치중하고 전통을 가르치는 인간성 상승을 위한 교육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테크노폴리에 대항하는 ‘사랑으로 무장한 저항투사’가 되라고 호소한다.
어찌보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 저자의 이 제안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참하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 과학이라는 깃발 아래 행해지고 있는 많은 연구들과 산물로 나오는 상품이 사실은 인류의 행복·불행과는 무관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과 같이 기술은 이제 인간의 고삐에서 풀려 나름대로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회사간의 경쟁을 위해, 때로는 국가간의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연구는 계속적으로 독려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한계에 도전하는 성취감과 개인의 성공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감으로써 기술의 발전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창 밖의 풍경이 달라진 것에 놀라듯 우리는 가끔씩 지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대답한다. 저자가 인용한 티무스왕의 말과 같이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책임의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기술문화에 젖어사는 아이들이 역사교육을 받는다고 하여 의식이 달라지리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역자의 성실한 번역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설득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2/06/22
○ 입력시간 : 2002/06/20 16:27:16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린 영화가 자주 등장해왔다. 허구인줄 알면서도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런 내용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기계문명에 대한 낯섦과 불안함을 반영하기에 오랫동안 관심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눈부시게 발전해온 기계화 문명 속에서 기계화의 부작용 또는 기계화가 몰고 올 폐해들에 대해 경종을 울려온 사람들은 기계화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닐 포스트먼은 이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적 관점에서 기계문명의 폐해를 분석했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도구사용문화·기술주의문화·테크노폴리로 분류한다. 여기에서 저자가 사용한 ‘테크노폴리’는 인간의 문화와 생활이 기술에 종속된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이 고안한 잠수함의 설계도를 끝내 공개하지 않은 것도 당시가 도구사용 문화였기 때문이다.
기술주의문화를 거쳐 테크노폴리에 이르면 기술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가져왔던 가치관·진리·의식뿐 아니라 인간들까지도 하위에 점유시켜 전체군주로 군림한다. 기술은 이제 전통적인 사고를 허물어뜨릴 뿐 아니라 인간에게 자신이 제공하는 사고 체계와 문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술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현혹돼 자신이 당연히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를 망각한 채 기꺼이 기술의 노예로 전락해버린다.
사회의 여러 각도에서 드러나는 테크노폴리의 현상을 고발하는 이 책의 말미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의 실마리는 교육에 거는 희망이다. 역사에 치중하고 전통을 가르치는 인간성 상승을 위한 교육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테크노폴리에 대항하는 ‘사랑으로 무장한 저항투사’가 되라고 호소한다.
어찌보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 저자의 이 제안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참하고픈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현재 과학이라는 깃발 아래 행해지고 있는 많은 연구들과 산물로 나오는 상품이 사실은 인류의 행복·불행과는 무관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과 같이 기술은 이제 인간의 고삐에서 풀려 나름대로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때로는 회사간의 경쟁을 위해, 때로는 국가간의 우위를 점령하기 위해 연구는 계속적으로 독려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연구자들은 한계에 도전하는 성취감과 개인의 성공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감으로써 기술의 발전은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창 밖의 풍경이 달라진 것에 놀라듯 우리는 가끔씩 지금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대답한다. 저자가 인용한 티무스왕의 말과 같이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책임의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기술문화에 젖어사는 아이들이 역사교육을 받는다고 하여 의식이 달라지리라는 저자의 생각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역자의 성실한 번역과 함께 현재의 상황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설득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2/06/22
○ 입력시간 : 2002/06/20 16:2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