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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Resolution Image Processing Lab.

 데이바 소벨, 윌리암 앤드루스 저/ 생각의 나무 펴냄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존재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경로로 누구에 의해 오늘날 자리하게 됐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실마리를 따라가다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노력, 눈물, 그리고 갈등과 고뇌를 만나게 된다.
 이 책 ‘경도’는 현대인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그래서 관심밖에 머물게 되는 경도(經度)를 주제로 한다. 위도와 경도. 그것은 바다나 강, 산맥과 같은 실제 존재하는 자연은 분명히 아님에도 우리에게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어린아이라도 지구본을 그린다면 먼저 바둑판같은 줄부터 그려놓고 시작할 정도로 그것은 생활과 과학에 가까이 접해 있다. 그렇기에 별다른 큰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할 것 같아 보이는, 전혀 획기적이지 않은 이 경도의 문제를 주제삼은 이 책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는 인공위성을 사용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해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개발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고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가지 다른 수단이 지구상 자신의 위치를 규명하기 위해 시도됐다.
 과거에 경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다에서였다. 육지는 이미 존재하는 지물과 지형을 이용해 위치 측정과 거리 계산이 가능했으나 바다에는 하늘과 물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확한 위치의 확인과 거리 계산이 수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항해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에 지나지 않았다. 선박들은 바다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질병에 걸리거나 생각지 않은 암초에 부딪쳐 수많은 목숨과 재물이 희생됐다. 오늘날 비행기가 경도와 위도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로 운항하다 수많은 인명사고를 낸다고 가정한다면 당시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8세기는 선박이 주요 운송수단이었으므로 바다 위에는 각국의 군사력과 경제력, 국민이 떠 있는 상태였다.
 이 책의 전반부는 당시의 여러 상황과 시도되고 연구되던 경도 측정방법의 모색을 다룬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가지각색의 방법들이 소개된다. 일례로 상처 입은 개를 배에 승선시키고 항구에서는 개의 붕대에 ‘교감의 가루약(powder of sympathy)’을 뿌려 개가 짖는 소리를 이용해 경도를 측정한다는 황당무계한 이론도 있다. 가장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 것은 천체를 이용한 것과 시계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영국이 1714년 경도법을 제정하고 정확한 경도측정 방법을 개발한 사람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발표하자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경도법이 등장한 후 수십년이 지나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경도를 찾는다’는 말은 곧 불가능에 도전한다는 뜻을 지니게 됐고 농담거리가 돼버렸다.
 책의 중후반부는 이때 등장한 존 해리슨이라는 시계공이 평생을 바쳐 자신의 시계를 이용해 경도를 측정하는 것에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한 외로운 천재의 이야기’라고 한 것은 그가 그 경도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727년께 해상시계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결국 국왕으로부터 상금을 받게 되는 1773년까지의 긴 세월동안 그는 오로지 해상시계의 탐구에 자신의 생애를 다 바친다.
 존은 천재적인 시계공이었다. 그가 만든 시계들은 현재도 작동하며 그 구조와 정확성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는 경도 심사국을 상대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과학을 천문학과 거의 동일시하던 당시의 심사원들은 천체를 이용한 경도 측정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고 여겼고, 그 중 네빌 매스캘린은 달을 이용한 ‘월거이용법(月距利用法)’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존 해리슨과 네빌 매스캘린을 주축으로 한 그 시대의 기득권자들의 길고도 힘겨운 투쟁은 흡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존 해리슨의 이야기는 현대의 과학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에게 기여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개개인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우리는 또다른 존 해리슨을 내모는 것은 아닌지. 또 그가 첫 해상시계만으로 경도상을 수상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기준에 미흡하다하여 50여년간을 완벽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생애를 바친 일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경도를 주제로 하고 있으나 글의 초점은 인간에게로 향하고 있다. 경도측정의 필요성과 당시 상황의 설명, 그리고 존 해리슨의 해상시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게 한다.
 이 책의 저자 데이바 소벨은 뉴욕타임스 과학기자 출신으로, 저서 ‘갈릴레오의 딸’로 잘 알려져 있다. 경도는 95년에 출판돼 20여개국에서 번역됐던 그녀의 글에 하버드대학 과학유물 전시실 큐레이터인 윌리엄 앤드루스의 사진과 그림들이 더해져 새로이 도해판으로 나온 작품이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1/10/06
○ 입력시간 : 2001/10/04 1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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