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 메디치 가(家) 이야기 2002/05/25
2003.02.05 14:51
크리스토퍼 히버트 지음 / 생각의나무 펴냄
서양 문화가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신문화가 깊이 박혀 있던 우리 문화를 빼내고 그 자리에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들은 서양 옷을 입어야 더 편하게 느끼고 그 음악에 먼저 감동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예술이라고 하면 서양예술을 떠올리고 예술사라면 당연히 서양예술사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행히 최근 우리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그것이 교육과정에도 반영되고 있으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과거 우리가 우리의 예술세계를 헌신짝 팽개치듯 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로 알던 이도 서양 화가들은 예술가로 대접했는데 그것은 서양 문화에서는 예술가를 인정해준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역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메디치가 이야기’는 한 가문의 번영과 몰락을 그린 역사서다. 역사의 긴 줄기 속에서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서양 역사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디치 가는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한편, 부를 이용해 민중의 지지를 얻어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후 300여년에 걸쳐 메디치 가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권력의 핵심을 거머쥔다. 작가 크리스토퍼 히버트는 이 책에서 메디치 가의 기틀을 세운 지오반니 데 메디치로부터 국부의 칭호를 받은 코지모,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연 로렌조, 그리고 후사없이 몰락해가는 가스토네에 이르기까지 인물들과 주변상황·암투·전쟁·질시·애정행각 등을 낱낱이 서술해 마치 그 시대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흥미를 준다.
비록 역사 속에 묻혀버리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메디치 가문이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남긴 값진 유물들 때문인데 그것들은 현재도 피렌체에서 빛을 발하며 메디치를 기억시켜주고 있다. 메디치 가문은 부를 축적한 만큼 도시를 위해 그 부를 사용했는데 특히 예술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재능이 피렌체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보티첼리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서양예술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예술의 중심지가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운데 예술을 사랑하는 후원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권력의 투쟁 안에서도 예술이 살아 있을 수 있었음은 그들의 후원 덕분이었겠지만 이제는 남겨진 예술작품을 보며 사라져간 후원자를 기억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도운 셈이다.
시대는 달라져서 우리나라는 동네마다 미술학원과 음악학원이 넘쳐난다. 눈길이 학원가방 들고 다니는 어린이로부터 수십만원을 호가한다는 고가 레슨을 받는 입시생에 이르고 나면 우리나라의 예술은 그야말로 문예부흥기를 맞은 듯한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후원은 고사하고 정작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호가조차 부족한 현실로 돌아오면 예술거품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거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질 따름이다.
<이정민 추계예대 강사·음악평론가 jungminkang@hotmail.com>
○ 신문게재일자 : 2002/05/25
○ 입력시간 : 2002/05/24 16:06:26
서양 문화가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신문화가 깊이 박혀 있던 우리 문화를 빼내고 그 자리에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우리들은 서양 옷을 입어야 더 편하게 느끼고 그 음악에 먼저 감동을 받는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예술이라고 하면 서양예술을 떠올리고 예술사라면 당연히 서양예술사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다행히 최근 우리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그것이 교육과정에도 반영되고 있으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과거 우리가 우리의 예술세계를 헌신짝 팽개치듯 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로 알던 이도 서양 화가들은 예술가로 대접했는데 그것은 서양 문화에서는 예술가를 인정해준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역사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메디치가 이야기’는 한 가문의 번영과 몰락을 그린 역사서다. 역사의 긴 줄기 속에서 권력과 재산을 소유한 가문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서양 역사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메디치 가는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한편, 부를 이용해 민중의 지지를 얻어내고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이후 300여년에 걸쳐 메디치 가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권력의 핵심을 거머쥔다. 작가 크리스토퍼 히버트는 이 책에서 메디치 가의 기틀을 세운 지오반니 데 메디치로부터 국부의 칭호를 받은 코지모, 피렌체의 황금시대를 연 로렌조, 그리고 후사없이 몰락해가는 가스토네에 이르기까지 인물들과 주변상황·암투·전쟁·질시·애정행각 등을 낱낱이 서술해 마치 그 시대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흥미를 준다.
비록 역사 속에 묻혀버리긴 했으나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메디치 가문이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남긴 값진 유물들 때문인데 그것들은 현재도 피렌체에서 빛을 발하며 메디치를 기억시켜주고 있다. 메디치 가문은 부를 축적한 만큼 도시를 위해 그 부를 사용했는데 특히 예술가들을 발굴해 그들의 재능이 피렌체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보티첼리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서양예술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예술의 중심지가 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운데 예술을 사랑하는 후원자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권력의 투쟁 안에서도 예술이 살아 있을 수 있었음은 그들의 후원 덕분이었겠지만 이제는 남겨진 예술작품을 보며 사라져간 후원자를 기억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도운 셈이다.
시대는 달라져서 우리나라는 동네마다 미술학원과 음악학원이 넘쳐난다. 눈길이 학원가방 들고 다니는 어린이로부터 수십만원을 호가한다는 고가 레슨을 받는 입시생에 이르고 나면 우리나라의 예술은 그야말로 문예부흥기를 맞은 듯한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후원은 고사하고 정작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호가조차 부족한 현실로 돌아오면 예술거품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거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질 따름이다.
<이정민 추계예대 강사·음악평론가 jungminkang@hotmail.com>
○ 신문게재일자 : 2002/05/25
○ 입력시간 : 2002/05/24 1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