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 24시간 사회(24Hour Society) 2001/11/03
2003.02.05 14:34
레온 크라이츠먼 저/ 민음사 펴냄
현대인이 가장 큰 아쉬움을 갖는 요소는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세계는 좁아지고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서비스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입음으로써 인간은 좀더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의 상황은 그와는 상반된, 시간에 초단위로 쫓기는 모습이 돼 버렸다. ‘24시간 사회’는 현대 사회의 배경을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문자 그대로 24시간이 가동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먼저 저자 레온 크라이츠먼은 24시간 사회 출현의 불가피성에 대해 논한다. 세탁기와 다리미 등 가전제품의 발명으로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됐지만 동시에 여성은 가벼워진 가사노동의 남은 시간을 사회로 돌리게 됐다. 매해 늘어나는 직업여성은 직장 근무와 병행해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느라 시간에 쫓기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동시간이 놀라울 만큼 단축됐으나 이에 부합해 사회는 24시간 연결 가능한 직원과 회사를 원한다. 최근 IT발달에 기인하는, 예전에 상상도 못했을 혜택들로 인해 이미 직장과 휴식처,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의 장벽은 깨진 상태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갖기를 바라게 됐으며 이 수요를 만족시키는 회사가 성공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열려 있는 상점과 은행, 페덱스 같은 배달 서비스 등. 이들은 24시간 사회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나 24시간 사회란 단순히 연속적으로 상점의 문을 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제약해오던 시간이라는 개념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거에 비해 다원화된 현대사회에는 또한 다양한 삶의 패턴이 존재한다. 정해진 시간에 의해 모든 것을 처리하는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시간을 운영함으로써 각자 모든 사람에 맞는 시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24시간 사회의 가치다. 시간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됨으로써 그만큼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24시간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하고 있는 이 책에서 24시간 사회의 걸림돌로 지적한 것은 인체의 생체리듬이다. 이미 연구된 바와 같이 생물체 내에는 내장된 생체시계 장치가 있으며 이것에 따라 생활할 때에 최적의 상태가 유지된다. 즉 인체가 먹어야 할 때와 잠자야 할 때, 그리고 활동할 때를 이미 알고 있어 그것을 인위적으로 역행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간 노동은 주간 노동에 비해 낮은 작업 실적을 나타내고 대형사고들의 많은 수가 늦은 밤에 일어났다는 사실 등을 조명해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개인의 경험에 비춰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24시간 사회가 도래됨으로써 물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 서비스를 담당하게 되고 그들의 희생 위에서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신기술 발달로 생체리듬 주기를 변화시키는 일이 곧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며 그럴 경우 24시간을 활용함으로써 인간 삶의 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24시간 사회라는 개념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삶의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며 반기는 한편,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다. 어찌됐든 저자의 지적과 같이 24시간 사회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시간적 제약이 덜 엄격했기 때문에 상점이 늦게까지 문을 연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IT산업, 즉 인터넷이나 휴대폰 같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편리함과 동시에 더 많은 요구와 제약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의 해결수단으로 본서가 제시하는 24시간 사회가 과연 그 해답을 담당할 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 이미 시작된 이러한 현상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든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본서는 그 미래의 모습을 시간적 측면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과 같이 24시간 사회가 일반화된다면 현재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좀더 빠르고 좀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1/11/03
○ 입력시간 : 2001/11/01 14:01:58
현대인이 가장 큰 아쉬움을 갖는 요소는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세계는 좁아지고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는 서비스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입음으로써 인간은 좀더 여유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현재의 상황은 그와는 상반된, 시간에 초단위로 쫓기는 모습이 돼 버렸다. ‘24시간 사회’는 현대 사회의 배경을 분석하고 설명하면서 문자 그대로 24시간이 가동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먼저 저자 레온 크라이츠먼은 24시간 사회 출현의 불가피성에 대해 논한다. 세탁기와 다리미 등 가전제품의 발명으로 여성이 가사노동에서 해방됐지만 동시에 여성은 가벼워진 가사노동의 남은 시간을 사회로 돌리게 됐다. 매해 늘어나는 직업여성은 직장 근무와 병행해 가사와 육아를 책임지느라 시간에 쫓기는 상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동시간이 놀라울 만큼 단축됐으나 이에 부합해 사회는 24시간 연결 가능한 직원과 회사를 원한다. 최근 IT발달에 기인하는, 예전에 상상도 못했을 혜택들로 인해 이미 직장과 휴식처,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의 장벽은 깨진 상태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갖기를 바라게 됐으며 이 수요를 만족시키는 회사가 성공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4시간 열려 있는 상점과 은행, 페덱스 같은 배달 서비스 등. 이들은 24시간 사회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나 24시간 사회란 단순히 연속적으로 상점의 문을 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제약해오던 시간이라는 개념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과거에 비해 다원화된 현대사회에는 또한 다양한 삶의 패턴이 존재한다. 정해진 시간에 의해 모든 것을 처리하는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시간을 운영함으로써 각자 모든 사람에 맞는 시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24시간 사회의 가치다. 시간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사회가 실현됨으로써 그만큼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24시간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하고 있는 이 책에서 24시간 사회의 걸림돌로 지적한 것은 인체의 생체리듬이다. 이미 연구된 바와 같이 생물체 내에는 내장된 생체시계 장치가 있으며 이것에 따라 생활할 때에 최적의 상태가 유지된다. 즉 인체가 먹어야 할 때와 잠자야 할 때, 그리고 활동할 때를 이미 알고 있어 그것을 인위적으로 역행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간 노동은 주간 노동에 비해 낮은 작업 실적을 나타내고 대형사고들의 많은 수가 늦은 밤에 일어났다는 사실 등을 조명해서가 아니라도 우리는 개인의 경험에 비춰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24시간 사회가 도래됨으로써 물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 서비스를 담당하게 되고 그들의 희생 위에서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신기술 발달로 생체리듬 주기를 변화시키는 일이 곧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며 그럴 경우 24시간을 활용함으로써 인간 삶의 질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
24시간 사회라는 개념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삶의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며 반기는 한편,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다. 어찌됐든 저자의 지적과 같이 24시간 사회는 이미 시작된 듯하다.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시간적 제약이 덜 엄격했기 때문에 상점이 늦게까지 문을 연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IT산업, 즉 인터넷이나 휴대폰 같은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편리함과 동시에 더 많은 요구와 제약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의 해결수단으로 본서가 제시하는 24시간 사회가 과연 그 해답을 담당할 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지만 이미 시작된 이러한 현상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든 유기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본서는 그 미래의 모습을 시간적 측면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과 같이 24시간 사회가 일반화된다면 현재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좀더 빠르고 좀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1/11/03
○ 입력시간 : 2001/11/01 14:0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