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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저/생각의나무 펴냄
 
 현대인이 영위하는 문화와 문명은 수천년 동안 축적된 학문 연구의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인간의 관심을 끌어온 분야가 있다면 바로 수학을 들 수 있다. 위대한 천재들의 수학적 발견은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금메달리스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수많은 운동선수처럼 수학 연구에 일생을 바쳤으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학자들이 많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천재였으나 업적을 남기지 못한 한 수학자의 외롭고도 처절한 삶을 조카의 눈을 빌어 그린 소설이다.
 직업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사는 삼촌 페트로스는 가족으로부터 실패한 인생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있다. 그러나 삼촌에 대한 호기심과 사춘기적 동경심을 가진 조카는 그가 과거 수학의 천재였으며 교수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수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조카에게 페트로스는 조카의 수학적 재능을 시험하기 위해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해보라고 시킨다. 그러나 실상은 그 단순한 명제가 바로 페트로스가 평생을 걸쳐 풀어보기 위해 고투한 ‘골드바흐의 추측’이었다. 수학적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는 것을 페트로스는 조카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타고난 수학적 재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가족과 학계의 기대를 모았던 페트로스. 하지만 첫사랑인 이졸데와 이별한 후, 그녀에 대한 복수심으로 수학 역사에 길이 남을 큰 발견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250여년간 미해결로 남아있던 ‘골드바흐의 추측’의 증명을 연구주제로 선택한다. 연구를 시작한 페트로스는 비밀리에 연구를 진행한다. 번뜩이는 수학적 천재성은 대부분 30세 이전에 고갈되므로 조속히 증명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 속에서 사회와 단절된 채 연구에만 몰두한다. 페트로스는 증명만 해낸다면 자신을 떠나간 연인 이졸데를 감동시킬 뿐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증명 가능할 것으로 여겼던 골드바흐의 추측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인 ‘참 명제라 할지라도 항상 증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는 논리 앞에 무너진다. 모든 참 명제는 증명이 가능하며, 그러므로 수학적 직관과 몰두를 통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던 페트로스의 믿음이 기초부터 흔들린 것이다. 연구를 중단한 그는 더 이상 수학자도, 교수도 아니었고 인생과 재능을 헛되이 소진해버린 무능한 실패자일 뿐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조카가 페트로스의 수학적 관심을 환기시키자 그는 다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고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이 일으킨 정신착란 상태에서 ‘골드버그의 추측’이 증명됐음을 조카에게 알리고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소설이 주는 감동과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인생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곳에 두는 것을 인생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골드바흐의 추측’과 같이 이룰 수 없는 문제에 인생을 낭비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페트로스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학문은 발달했다. 단지 페트로스가 그 문제에 강박적으로 몰입해 인생의 다양하고도 중요한 요소들을 잃어버린 것이 그의 실패였다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는 열다섯의 나이로 컬럼비아대학 수학과에 입학할 만큼 수학적 재능이 뛰어난 학자였다. 현재는 수학을 떠나서 연극·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소설이면서도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깊이와 사랑이 스며있는 것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베일에 싸여 있는 수학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즐거움과 수학적 세계에 접근하는 지적 만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연세대 강문기 교수 mkang@yonsei.ac.kr>  

○ 신문게재일자 : 2001/12/29
○ 입력시간 : 2001/12/27 16: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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